▲한결같이 다정한 윤미자&장윤촌 부부
선천성 B형간염, 뇌출혈, 신부전, 고혈압, 당뇨, 백내장, 이로 인한 합병증까지. 한 사람에게 이토록 많은 병이 있다. 고달픈 삶을 가히 짐작할 수 없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기에 죽음의 끝까지 내몰렸던 1년 전. 그러나 간이식이라는 마지막 끈을 놓지 않았던 이들에게 마침내 기적이 찾아왔다.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간이식을
“얼룩덜룩한 반점이 번져서 팔다리가 시커멨어요. 눈동자는 얼마나 노란지. 숨도 스스로 못 쉬죠, 피는 계속 수혈 받죠. 오늘밤을 못 넘긴다는 소리를 삼일 연속 들었어요.”
선천성 B형간염을 앓던 아내는 간성뇌증으로 자꾸만 혼수상태가 됐다. 한 번 깨어나는 데 3일이 걸리기도 하고, 5일이 걸리기도 했다. 지난해 7월 18일, 윤미자 씨가 간성뇌증으로 실려 왔던 그날에도 장윤촌 씨는 아내가 며칠이면 깨어나겠지 생각했다.
아내는 열흘이 넘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온몸에 검은콩 같은 반점 수백 개가 번졌다. 심근경색이 왔다. 혈압이 50으로 떨어졌다. 간과 신장의 기능은 0에 가까웠다.
“간이식할 상태가 아니었는데 제가 막 우겼어요.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으니, 절대로 두말 안 할 테니까 한 번만 도와달라고 안형준 교수님께 떼를 썼어요. 동의서와 각서를 100장이라도 써올 테니까, 한 마디 이의 제기도 하지 않겠다고요.”
포기도 안 했지만 바라지도 않았던, 기적
지난해 7월 말,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미자 씨를 등재했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올리자마자 대기 5순위가 됐다. 이틀 뒤 1순위가 됐다. 그리고 그날, 수술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8월 1일 새벽 5시에 시작된 수술은 25시간이 지난 그 다음 날 새벽 6시에 끝났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한 수술이었다. 보통 2~3일이면 깨어나지만 미자 씨는 13일 후에 눈을 떴다.
“포기는 안 했지만 살아날 거라고 기대하지도 못했어요. 하도 상태가 안 좋아서 처음에는 수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안형준 교수님을 믿었습니다. 새벽까지 수술하신 그날도 아내 옆에서 밤을 새시더라고요. 너무 고생하셔서 얼굴이 말이 아니었죠.”
미자 씨는 무균실로 옮겨졌다. 8월의 무균실은 찜통이었다. 무균가운과 마스크, 모자를 쓰고 들어가면 땀이 양말까지 적셨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 모두 그 더운 데서 땀을 뻘뻘 흘리셨어요. 무균실에 머무르는 내내 빵과 캔 커피를 열 몇 개씩,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갖다 드렸죠.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리니까요.”
너무 절망적이기에 오히려 웃었던 나날
10월 말경, 간 기능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11월 1일, 뇌출혈이 왔다. 두 번의 뇌출혈은 왼쪽 뇌를 덮쳤다. 안형준 교수가 신경외과와 손잡고 다시 한 번 미자 씨를 위해 나섰다. 두 달 만에 상태가 나아졌다. 수학과 출신인 미자 씨는 뇌가 회복되는 속도가 남들의 몇 십 배로 빨랐다. 오른쪽 팔다리와 얼굴 근육, 언어사용에 장애가 왔었지만 지금은 말도 어눌하지 않고, 윤촌 씨가 손을 잡아주면 걷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
“집사람이 워낙 좋은 일을 많이 했어요. 20년 넘게 방학이면 학생들에게 무료로 수학도 가르쳐주고, 구민회관에서 할머니들에게 국어도 가르쳐줬어요.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꼭 살아날 거라는 격려도 많이 받았어요. 뇌출혈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아마 뛰어다녔을 거예요.”
간이식 수술은 1년이 지나야 안정기에 든다.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미자 씨가 복용하는 면역억제제는 8알에서 3알로 줄었다. 그러나 지난여름만 해도 미자 씨는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했다. 간이식으로 유명한 대학병원들은 모두 같은 소리만 반복했다.
“의사들이 절대 수술 못한다고 그랬어요. 저 그냥 죽어야 되나 생각했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미자 씨가 한 손으로 다른 손을 꼭 움켜쥔다. 결국 선택은 하나였다. 지난 10년간 B형간염을 치료했던 경희의료원을 믿어보는 것. 이 믿음은 기적을 낳았다.
“당신 때문에 밤샌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 사람아.”
때론 현실이 더 소설 같은 법. 너무나 절망적이었기에, 윤촌 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웃음을 잃어본 적이 없다. 이들 부부의 웃음이 이제는 행복한 웃음이 되기만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