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의 신장 이식 성공한 이장손&전성우 부부 / 신장내과 이태원 교수

9▲부부간 신장 이식에 성공한 이장손, 전성우 부부

 

“당신, 죽게 놔두지 않아. 염려 마, 내가 살려줄 테니”

어느 날부터 아내의 신장이 나빠졌다. 나무젓가락처럼 말라가는 아내에게 남편은 ‘내가 살려주겠다’는 말을 던지곤 했다. 당장에라도 뚝 떼 주고 싶었지만, 더 건강한 신장을 주려고 준비한 시간이 10년. 마침내 올해 3월 그는 자신의 반쪽을, 자신의 또 다른 반쪽에게 성큼 떼 줬다.

 

 

 

‘남자’라면 누구든 하는 일
“결혼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해요. 자기 마누라가 아파서 빌빌거리면 어느 남자든 합니다. 그냥 놔두면 고생만 하다 죽는다잖아요.” 아무리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라도 누군가에게 신장을 주기란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부부 간의 신장 이식은 아직까지 드물다. 나이 일흔에 부인에게 왼쪽 신장을 떼어 준 이장손 씨에게 그 계기를 묻자, 그는 너무 당연한 질문을 듣는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의 부인 전성우 씨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심하게 앓고 난 뒤 신장이 나빠졌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너무 심해서 비염 약을 많이 먹었는데 부작용이 일어났죠. 동네병원에 갔더니 신장이 많이 나빠졌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10년 넘게 신장 치료를 받았고요.” 중매로 만난 두 사람은 지금까지 40년을 함께했다. 광복이 되던 해 태어난 ‘해방둥이’ 장손씨가 옛일을 회상한다. “그때는 먹고 살기 다 어려웠죠. 그동안 고생하고 살았으니까 떼어주자고 생각했어요. 자식도, 형제자매도 있지만 줄 사람은 오직 나라고…. 사실 이 정도 같이 살았으면 좋든 나쁘든 다 꺼내줍니다. 제가 유별난 게 아니에요.”

 

유별난 그는 ‘신장 박사’
그러나 그는 유별났다. 완치되는 방법이라고는 신장 이식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날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틈날 때마다 도서관에 갔다. 신장에 관한 책은 무조건 빌려서 달달 외웠다. 같은 책을 네 번, 다섯 번씩 본 건 예사였다. 그렇게 공부에만 들인 시간이 8년. 그의 입에서 내내 신장과 관련된 전문 지식이 쏟아져 나온 이유였다. 몸 관리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 “받는 사람 신장이 고장 났으니 까 주는 사람 게 좋아야 할 거 아니에요. 늙은이 신장 받고 고생하면 어떡해요. 그래서 관리를 시작했죠. 신장을 주기로 마음먹은 건 한 10년쯤 되었지만, 그동안 이런 얘기는 한 번도 안 했어요. 마누라가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생각할까 봐요. 가끔 농담으로만 당신 죽게 내 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염려 말라고, 내가 살려주겠다고만 했죠.”

 

10년을 품어온 약속을 실현한 날
지난 3월 17일, 장손 씨는 10년을 품어온 약속을 지켰다. 그 과정도 놀라웠다. 혈액형이 같았을 뿐 아니라, 유전자 검사 결과 여섯 개 유전자 가운데 중요한 한 개가 일치한 것. 피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부에게는 매우 드문 일이다. 덕분에 신장 이식 수술은 무사히 성공했 고, 성우 씨는 건강을 회복해가고 있다. “예전에는 다들 절 보고 ‘비쩍 마른 나무젓가락에 소가죽 껍데기 씌운 것 같다’고 그랬어요. 팔다리가 너무 말라서 뼈밖에 안 보인다고 요. 남편한테 정말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던 성우 씨지만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한껏 표현하는 중이다.

그런 아내를 보는 장손 씨의 얼굴에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이 떠오른다. 일흔이라는 나이. 듬성듬성해진 머리숱, 그마저도 백발이 성성하다. 수술 전, 그는 의사로부터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누구도 장손씨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내 목숨 걸고 꺼내줬어요. 잘못되도 난 괜찮 았어요, 살 만큼 살았으니까. 아내가 이렇게 좋아진 걸 보면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죠.” 길었던 인터뷰,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의 사진 촬영에도 그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아내의 오른편에 서서 짐을 챙겨 들고 병원을 떠나는 장손 씨의 뒷모습은 남자,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