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습관이 아이의 척추를 위협한다 / 정형외과 이정희 교수

3▲정형외과 이정희 교수

 

아이가 중학생이 됐다. 이제는 밖에서 뛰어노는 모습보다 책상 앞에서 몇 시간이고 진득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더 흐뭇하다. 문제는 잘못된 자세 때문에 내 아이의 척추 건강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 정형외과 이정희 교수는 척추 질환은 ‘습관’이라고 단언한다. 자라나는 청소년에게는 어깨 펼 시간이 분명히 필요하다.

엄마의 허리를 보면 40년 후 딸의 허리 모습이 보여요. 척추 질환은 생활패턴과 습관에서 나오죠. 아이들이 오면 공부할 때 좋은 자세로, 꼿꼿하고 바르게 앉는 법부터 설명해줘요.

 

움츠린 자세와 스마트 기기, 척추 질환의 주범
“허리랑 어깨 쭉 펴고 똑바로 앉으렴.”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어도 실천은 쉽지 않다. 조금만 방심해도 자세가 흐트러진다. 하루 10시간이 넘게 책상 앞에 앉아있는 청소년에게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척추 건강에 비상이 걸린다. “청소년기에 많이 발생하는 척추 질환은 척추측만증과 척추후만증입니다. 측만증은 허리가 옆으로 휜 것이고, 후만증은 등이 앞으로 굽은 것이죠. 최근에는 후만증으로 내원하는 환자가 늘고 있어요.” 정형외과 이정희 교수는 척추후만증의 주요 원인으로 자세 불량을 꼽는다. 뛰어놀 시간 없이 온종일 학교와 학원에서 책만 들여다보면 몸은 자연히 움츠러든다. 화면을 보느라 몸을 수그리게 되는 스마트 기기도 자세성 척추후만증을 늘린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척추측만증과 척추후만증은 사춘기가 오기 직전 급격히 나빠진다. 그러나 심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별다른 증상을 동반하지 않아, 학교 건강검진에서 발견돼 내원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엄마가 아이를 목욕시키다가 불룩 튀어나온 등을 이상하게 여겨 오는 경우도 있으며, 스커트 한 쪽이 짧거나 길게 보이고 어깨가 자꾸 비뚤어지는 게 이상해 내원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에게 별다른 통증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인의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애들은 아무 느낌이 없어요. 엄마가 병원에 가자고 하니까 오는 거죠. 다행히 자세 때문에 나타나는 후만증은 쉽게 교정이 됩니다. 반면 측만증은 습관성인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척추가 휘어진 게 아니라 휘어진 것처럼 보이는 거죠. 측만증 환자는 발 길이에 차이가 나거나 허리 디스크가 있는 등 원인이 있어요. 이들 증상이 있으면 측만증이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이런 원인 질환을 없애주면
측만증은 그냥 사라집니다.”

 

수술 건수 국내 ‘톱’ 수술이 가장 즐거운 의사
이 교수는 척추측만증과 척추후만증에 대한 정보를 담은 홈페이지(scoliosis.khmc.or.kr)를 운영한다. 일종의 사명감이다. “인터넷에는 너무 이상한 정보가 많아요.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게 됐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질병의 정의와 원인, 치료법이거든요. 의대에서 배우는 교과서 내용을 옮겨놨어요. 누구나 언제든 필요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요.” 상세한 정보를 담은 깔끔한 디자인의 홈페이지를 그가 앉은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보여준다. 척추 수술 건수로 이 교수는 국내 최고다. 연간 500~600건, 일주일에 이틀이 수술하는 날이니 하루 평균 대여섯 건을 하는 셈이다. 긴 수술은 8~10시간, 짧은 수술이라도 1~2시간 은 걸린다. 수술방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기 일쑤다. 이날 인터뷰도 수술 사이, 잠깐의 틈을 활용해 진행됐다. 쉴 틈이라곤 없지만 이 교수는 수술하는 시간이 가장 좋다.

“수술할 때는 하나도 안 힘들어요. 집중하면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오히려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수술할 수 있다는 점이 감사하죠.” 담담한 어조에 끌려 의사로서의 철학을 물었다.

“최선을 다하는 거죠. 후배들한테도 잘하려고 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해요. 제 애들한테도요. 결과에 너무 연연해할 필요가 없어요. 결과는 최선을 다했을 때 얻어지는 거니까.”

참 평범한 대답. 문득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망치와 끌로 석수장이가 따로 없을 정도로 수천 번, 수만 번 정형외과 수술을 해온 그다. 선이 고운 얼굴이 무색하게도 뭉툭하게 변해버린 그 손은 이 교수의 대답이 ‘진짜’라고 말하고 있었다.

 

손끝에서 펼쳐지는 기적의 드라마
이정희 교수는 의대 실습 시절, 환자의 수술 전・후 모습이 완전히 바뀌는 모습에 끌려 정형외과를 택했다. ‘환자들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좋아진다’는 게 그가 꼽는 매력.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보여준 아이로 그는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민정이를 떠올린다.

당시 12살, 척추측만증이 심했던 민정이는 많이 휘어진 어깨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려워했다. 심리적 위축감도 상당했다.
그랬던 아이가 수술을 받고 180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병원에 거의 끌려오듯 왔어요. 그런데 수술한 다음부터는 친구와 손을 잡고 오는 거예요. 지금은 너무나 밝고 예뻐져서 몰라볼 정도죠. 덕분에 매해 크리스마스 때마다 민정이한테서 카드도 받고 있어요.”

그에게 척추는 ‘습관의 공유’다. “엄마의 허리를 보면 40년 후 딸의 허리 모습이 보여요. 척추 질환은 생활패턴과 습관에서 나오죠. 청소년들은 하루 종일 앉아서 책 보느라고 어깨 펼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오면 공부할 때 좋은 자세로 앉는 법부터 설명해줘요. 자세 바르게 하고 어깨와 가슴 딱 펴고 꼿꼿하게 앉으라고요.”

인터뷰를 시작한 지 10분이 조금 넘었을까, 그의 휴대전화가 웅웅거린 다. “수술방이네….” 민망한 듯 웃어 보이는 그를 잡고 ‘딱 5분만’을 외쳤다. 오전 11시 50분, 점심은 안중에도 없는 듯 다시 수술방으로 향하는 이정희 교수에게서 연한 설렘이 묻어나온다. 수술할 때가 가장 좋다던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Doctor
정형외과 이정희 교수
– 전문진료 분야 : 척추 질환, 디스크 협착증, 척추 측만증, 척추 후만증, 척추 외상
– 진료시간 : 월(종일), 목(오전), 수(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