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고령 인체조직기증자, 故김희숙 여사
남대문시장의 한 가게. 작지만 사람냄새 나는 그곳에서 양윤옥(53) 씨를 만났다. 그녀는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며 부끄러워했지만,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故김희숙 여사(가명)의 선택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향년 82세, 국내 최고령 인체조직기증자라는 기록을 세운 故김희숙 여사의 딸 양윤옥 씨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갑작스러운 이별. 어머니를 위하여.
모든 것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언젠가는 떠나보내 드려야 한다 생각은 했지만, 갑작스럽게 전해진 어머니의 교통사고 소식은 윤옥 씨를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와의 약속을 생각했다. 어머니의 오랜 꿈, 장기기증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동안 잘해드린 것은 없어도 당신이 원하는 것은 들어드리자는 마음이었다. 처음 어머니의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서약에 대해 들었을 때는 원망도 있었지만 막상 선택의 순간이 오니 망설임은 없었다. 어머니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만이 정답이었다. 비록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장기기증은 할 수 없었지만, 인체조직기증을 통해 어머니의 소망을 이루어드릴 수 있었다.
어머니의 오랜 꿈, 장기기증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장기기증이나 인체조직기증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고령의 고인께서 어떤 계기로 기증을 결심하게 되셨는지 궁금했다. “저희 막내 외삼촌께서 의대 재학 중이던 시절, 동생 분께 시신기증이 거의 없어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을 들으시고는 처음 기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어느 날인가 절에 다녀오시더니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서약을 하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자식들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지요. 항상 당신이 죽더라도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당신의 몸은 당신이 치우고 간다며 매몰차게 말씀하시는 것이 서운하기도 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본인의 장기기증에 대한 생각을 매번 말씀하시고 다니셨어요.” 이렇듯 장기기증에 대한 고인의 의지는 대단했다. 그러나 유가족의 동의가 없으면 기증은 불가능한 법. 그렇지만, 지난 25년간 어머니를 모셔온 윤옥 씨는 누구보다 어머니의 뜻을 잘 알았기에,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인체조직기증이 어떠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지만, 경희의료원 장기이식센터를 통해 기증 절차 일체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또한, 예상치 못하게 장례비 감면까지 받게 되었다. 윤옥 씨는 그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좋은 일을 했을 뿐인데 이 같은 도움을 받게 될 줄 몰랐다며 감사해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인체조직기증으로 말미암아 생긴 돈만큼은 차마 쓸 수 없었다는 윤옥 씨와 형제들은, 생전에 보시를 많이 하고 싶어 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에 따라 그 돈을 스님을 통해 어머니 이름으로 보육원에 전했다.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어머니
자신이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유지해야 하고,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상황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장기기증이나 인체조직기증에 대한 인식이 낮다. 이를 이번에 누구보다 절실히 느낀 윤옥 씨는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한 사람의 기증으로 여러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이잖아요. 일반인의 인식도 아쉽고 무엇보다 의료진의 적극적인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故김희숙 여사는 장기기증의 기회는 놓쳤지만, 인체조직기증을 통해 100여 명의 사람들에게 새 삶을 살 기회를 전했다. “제대로 된 유언조차 듣지 못하고 어머니와 헤어지게 된 것은 슬프고 아쉽지만, 인체조직기증을 통해 생명을 나누고 가신 어머니가 누구보다 자랑스럽습니다. 저 또한 훗날에 장기기증이든 인체조직기증이든 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세상을 떠나셨지만, 윤옥 씨와 가족들은 고인이 남긴 위대한 유산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낼 것이다.
인체조직기증.장기기증이란?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 참고)
| 구분 | 인체조직 | 장기 |
| 종류 | 피부, 뼈, 인대 및 건, 혈관, 연골, 심장판막, 양막, 근막 등 | 신장, 간장, 췌장, 췌도, 소장, 심장, 폐, 췌도, 각막 등 |
| 기증시기 | 사망 후 15시간 이내 | 살아있을 때 혹은 뇌사 시 |
| 이식시기 | 가공 및 보관 거쳐 이식(최장 2년 보관) | 즉각적으로 이식 |
| 특징 | 한 사람의 기증으로 최대 백여명이 수혜가능 | 한 사람의 기증으로 최대 9명이 수혜가능 |